‘탄소중립’이나 ‘ESG 경영’과 같은 친환경 관련 화두는 이제 일부 전문가가 아닌 일반 대중도 관심을 갖는 거대담론이 됐다. 이는 무분별한 탄소배출로 인해 발생하는 각종 환경문제와 기후 위기가 우리의 예상보다 더 심각하고, 인류의 생존과도 직결되어 있음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후 변화라는 위험을 타개할 해결책인 탄소중립은 인간의 활동으로 생성되고 배출되는 온실가스를 흡수 또는 제거해 실질적인 탄소 순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것을 말한다. 탄소중립 실현은 기후기술 개발, 탄소흡수원 보존과 확대, 청정에너지 개발 등 다양한 수단을 총동원해야 하는데, 목표 달성이 쉽지 않아 세계 각국은 실현 가능한 계획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국제사회는 탄소중립 실현을 통해 지구의 평균온도를 산업혁명 시기 대비 2°C 이내 상승으로 억제하기 위해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United Nations Framework Convention on Climate Change)을 채택하고,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변화 적응 의무를 참여국에 부여했다. 목표 달성을 위해서 2050년 세계 에너지 수요가 신재생에너지 44%, 화석 연료 45%, 원자력 11% 수준으로 변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 화석연료 사용을 대체할 에너지로 주목하는 에너지는 신재생에너지다. 다만, 풍력, 태양열, 조력 등을 활용해 발전하는 신재생에너지는 지리적, 환경적 요인에 따라 전력을 수급하는 데 변수가 많다. 신재생에너지의 활용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이러한 변수를 보완할 수 있는 대규모 에너지 저장장치가 필요하다. 수소는 매우 높은 에너지 저장량을 가지는 대규모 에너지 저장 매체이자 열에너지 또는 전기에너지로의 전환이 용이한 에너지 캐리어다. 신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기를 대규모로 저장하고, 해상이나 육로를 통해 수송도 가능하며, 전력이 필요할 때 언제든 전환해 사용하는 ‘친환경 미래 사회 에너지 네트워크’의 핵심인 것이다. 우리나라 역시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 빠르게 수소경제, 수소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노력을 실천하고 있다.
2021 수소모빌리티+쇼에서 미리 만난 수소사회
친환경 사회 구현에 대한 필요로 수소에너지에 대한 관심은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2020년부터 ‘수소모빌리티+쇼’를 개최하며 수소모빌리티, 수소충전인프라, 수소에너지 등 수소 관련 기술을 일반에 선보이고 있다. 올해 9월 개최된 ‘2021 수소모빌리티+쇼’는 여느 때보다 더 다양한 형태로 수소에너지를 활용하는 모습을 선보이며 수소사회로의 진입이 멀지 않음을 보여줬다. 이미 도로 위를 달리고 있는 수소전기차뿐만 아니라 수소에너지로 움직이는 새로운 형태의 모빌리티가 공개됐고, 현재보다 더 높은 효율로 수소를 활용해 전기에너지를 생산하는 차세대 연료전지 시스템이나 움직이는 수소충전소 등도 공개됐다. 특히 현대로템이 개발해 공개한 수소전기트램 콘셉트 차량은 새로운 모빌리티뿐만 아니라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접하는 이동수단인 열차에도 수소에너지가 활용될 것임을 널리 알렸다.
철도 산업에서도 주목하는 수소에너지
글로벌 수소 열차 개발 현황
수소로 달리는 수소 열차는 해외에서도 활발히 개발 중이다. 일본의 경우 2007년 수소연료전지를 탑재한 하이브리드 철도 차량 개발에 성공했고, 2020년에는 동일본여객철도(JR East)가 히타치(Hitachi), 토요타(Toyota)와 함께 상업 운행을 위한 수소연료전지 하이브리드 철도 개발에 착수했다. 2016년 수소연료전지 하이브리드 트램을 출시한 중국의 CRRC(China Railway Rolling stock Corporation Limited)는 중국 루저우, 타이저우 시 등에서 운행할 예정이다.
근래에는 독일, 프랑스 등 유럽의 철도 강국들이 수소 열차 관련 기술 개발을 주도하고 있다. 실제로 독일은 지난 2018년 세계 최초로 수소를 에너지원으로 하는 수소 열차 운행에 나섰다. 프랑스의 알스톰(Alstom)이 개발한 이 열차는 독일 니더작센주에서 첫 운행을 시작했으며, 독일은 오는 2040년까지 전국의 모든 디젤기관차를 수소 열차로 대체할 예정이다. 독일의 지멘스(Siemens)에서 개발한 수소 열차는 오는 2023년부터 아우크스부르크-퓌센 구간에서 시범 운행에 들어갈 예정이다. 독일에서 실제 운행 중인 수소 열차를 개발한 프랑스는 2025년 자국 내 수소 열차 상용화를 시작으로 추후 디젤 열차를 모두 수소 열차로 전환한다는 계획이다. 이외에도 영국, 스페인 등이 수소 열차 개발을 진행 중이다. 미국은 2019년부터 샌버나디노 카운티 교통국이 스위스 스테들러(Stadler)와 합작해 수소연료전지 하이브리드 철도차량 개발에 착수했고, 2024년 캘리포니아에서 주행 시험이 예정되어있다.
국내의 경우 산업통상자원부, 한국철도기술연구원, 현대로템, 울산테크노파크, 한국자동차연구원 등이 협업해 ‘수소전기트램 실증 국가 연구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현대로템은 2023년까지 이번 실증 사업을 성공적으로 마친 후 본격적으로 수소전기트램의 실용화에 나설 예정이다.
열차에 사용되는 동력의 종류와 특징
그렇다면 철도 산업에서 수소 열차가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 번째 이유는 전제와 같이 현재 우리 사회가 탄소중립을 위한 친환경 수소사회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수소 열차는 운행 과정에서 오염물질 배출 없이 순수한 물만 배출하고, 고성능 필터로 공기 중의 미세먼지까지 제거해 친환경 사회의 모빌리티로 가장 적합하다.
두 번째는 설치와 이용 편의성 때문이다. 전차선을 통해 전력을 공급받아 움직이는 전차는 인프라가 발달한 도심 지역에선 효율적이지만, 시설을 갖추는 데 제약이 많아 운행 지역을 선정하는 데 한계가 있다. 현재 산간 지역과 같이 전차선 설치가 어려운 곳은 주로 디젤기관차 또는 디젤동차가 운영되는데, 친환경 모빌리티에 대한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어 전차선이 필요 없는 수소 열차가 이를 대신할 것으로 예상된다. 배터리를 탑재한 열차 역시 전차선이 필요 없는 친환경 열차지만 수소 열차에 비해 주행 거리가 짧고 충전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단점이 있다. 물론 수소 열차는 전차선 설치가 어려운 산간지역뿐만 아니라 현대로템이 공개한 콘셉트와 같이 복잡한 도심 속에서도 유용하게 활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고효율, 고성능 액화수소열차
더 멀리 달리는 액화수소열차
현재 유럽지역에서 상용화된 수소 열차는 현재 상용화된 대부분의 모빌리티처럼 고압으로 압축된 기체수소를 연료로 사용한다. 현대로템이 공개한 수소전기트램 콘셉트 차량 역시 기체수소로 달린다. 현대로템은 2021년부터 한국철도기술연구원과 함께 액화수소 기반 수소기관차의 핵심 기술도 개발 중인데, 국내에서 액화수소를 기반으로 한 열차 개발에 성공할 경우 이는 세계 최초다.
국내에서 개발 중인 액화수소 기관차는 최고시속 150km, 한 번 충전으로 1,000km 이상 운행을 목표로 한다. 이는 유럽의 700bar 기체수소 열차와 비교했을 때 운행 거리는 1.6배 향상, 연료 충전 시간은 20% 단축하는 것이다. 아울러 상용 디젤 열차를 대체할 수 있는 2.7MW(390kW 모듈 기반)급 연료전지 추진기술 및 액화수소 공급 기술을 연구 개발 중이다. 연구팀은 액화수소 하이브리드 추진시스템, 고단열 극저온 액화수소 저장 기술 및 고속 충전 기술 등을 개발해 2022년 하반기 트램에 장착하여 시험을 진행하고, 이후에는 대용량 열차 구현을 위한 액화수소 기반 추진 기술 및 액화수소 공급 기술을 개발해 전차선이 없는 구간에서 운영할 수 있는 액화수소 열차 실용화를 진행할 예정이다.
액화수소의 장점
이미 해외에서 상용화 사례가 있는 기체수소 열차가 아닌 액화수소 열차를 개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액화수소는 고압 기체수소와 달리 대기압 수준의 압력에서 보관할 수 있어 안전성이 높고, 기체수소 대비 저장 밀도가 2배 수준으로 저장에 용이하다. 이송 효율로 봐도 7배에 가까운 효율성을 지녔다. 액화수소 인프라 구축으로 대량 저장 및 이용이 가능해지면 갈수록 경제성이 높아진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철도에 최적화된 액화수소
이러한 액화수소의 장점은 철도 분야에서 그 효용성이 높다. 기체수소 대비 충전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충전소 인프라를 최소화해 하나의 충전소로 다수의 열차를 충전할 수 있고, 에너지 저장밀도가 높아 주행거리가 긴 열차 특성에도 적합하다. 다수의 승객을 수송하는 열차의 안전성을 더욱 견고히 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액화수소를 저장하고 활용하는 데에는 냉각장치, 기화장치, 자연증발, 저장탱크 개발 등 기술적 난제가 존재한다. 다만 관련 분야에 대한 연구가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만큼 향후 상업 운행이 가능할 정도의 기술이 성숙한 후에는 친환경이라는 장점뿐만 아니라 높은 경제성과 안전성까지 갖춘 액화수소열차가 친환경 수소사회의 핵심 운송수단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진정한 수소사회를 준비하는 현대로템
현대로템은 이처럼 수소전기트램 실증 연구개발, 액화수소기반 수소기관차 핵심기술 개발 등 철도 분야의 수소에너지 도입을 위한 폭넓은 행보를 보이고 있다. 아울러 철도 분야뿐만 아니라 수소사회로의 빠른 전환을 위해 인프라 구축에도 힘쓰고 있다. 의왕연구소 부지에 ‘H2 설비 조립센터’를 구축해 천연가스에서 수소를 추출하는 수소추출기를 생산하고 있고, 수소모빌리티에 수소연료를 공급하기 위한 수소충전소 및 하이넷 당진 수소출하센터 구축 등 수소 충전 인프라와 관련된 다양한 사업을 진행 중이다.
또한 현대로템은 열차 이외에도 수소를 에너지원으로 움직이는 다양한 모빌리티를 선보이고 있다. 수소모빌리티+쇼에서는 드론을 띄워 재난 현장을 촬영하면서 방수총을 가동해 화재를 진압하고 인명까지 구조하는 자율주행 수소 모빌리티 ‘레스큐 드론’을 선보였고, ‘서울 국제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ADEX 2021)’에서는 국내 국방 분야 최초로 수소연료전지를 탑재한 무인 플랫폼 ‘디펜스 드론’을 선보였다. 디펜스 드론은 국방 특성상 삼엄한 감시체계에서도 그 역할과 기능을 다해야 하므로 수소연료전지의 발열 최소화 등 관련 첨단 기술 대부분이 도입된다. 또한, 원격 조정 및 자율주행을 지원하고 전후방 독립 조향 시스템으로 제자리에서 돌거나 대각선으로 움직이는 크랩 워크도 구현한다. 참고로 디펜스 드론의 최고속도는 시속 120km 이상이며, 1회 충전 시 주행거리는 450km에 달한다.
이상기후로 발생할 미래의 재난을 예방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탄소중립 실현을 통해 지구의 온도 상승을 억제하는 것이다. 이제는 산업화 이후 고착화된 화석 연료 중심의 에너지 소비 행태에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친환경성뿐만 아니라 경제성, 지속가능성 등 다양한 잠재력을 갖춘 수소는 이러한 변화를 이끌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다. 현대로템은 철도 분야를 비롯해 수소의 생산, 저장, 운송, 활용 등 다방면에서 연구개발을 진행하며 친환경 수소사회 구현을 앞당길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