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차량은 가장 많은 인원을 수송할 수 있는 지상 운송수단이며, 많은 승객을 수송하는 만큼 지상에서의 어떤 교통수단보다도 더 높은 안전 기준이 요구된다. 철도안전법, 철도관련 규정/규격 등에서 제시하는 안전 규정과 정해진 노선의 선로에서만 주행하는 고유의 안정성 덕분에 열차는 비행기와 더불어 사고율이 가장 낮은 운송수단이다.
국내 철도차량의 충돌 및 안전설계 기준
국내 열차 충돌 안전설계에 대한 구체적 관심이 시작된 것은 KTX 도입이 계기가 되었다. 특히, 철도차량의 화재사고와 열차의 속도 증가로 인한 탈선 발생률 증가와 함께 안전에 대한 요구사항이 대두되고, 이러한 요구사항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법제화한 것이 철도안전법의 시작이다. 철도안전법의 충돌안전 관련 기준에 의해 사고 시 충돌 에너지를 흡수하기 위하여 열차의 전/후두부에 에너지 흡수를 위한 구조물을 장착하는 설계 기준이 마련되었다.
국토교통부가 고시한 철도차량기술기준의 충돌안전설계 관련 항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철도차량은 충돌사고에 대비하여 다음 각 호의 기준에 적합하게 설계되어야 한다.
(1) 충돌사고가 발생한 경우 기관사 및 승객이 위치하는 부분의 변형 및 철도차량간 올라타는 현상, 충돌 후 탈선 등을 최소화하도록 할 것
(2) 충돌사고가 발생한 경우 철도차량의 차체구조물 등이 승객 등이 위치한 장소에 침입하는 것을 최소화하도록 할 것
(3) 고속열차에 조성되는 고속기관차ㆍ고속동력차ㆍ고속객차(고속동력객차 포함)ㆍ고속부수차(고속제어차 포함) 등은 충돌 시 발생하는 충돌에너지를 철도차량별로 충분히 분산 흡수하여 승객 및 승무원의 상해를 최소화하도록 할 것
(4) 연결기의 허용하중을 초과하는 충돌사고가 발생한 경우 승객 및 승무원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차체부위에 구조적으로 약한 부위를 설계하거나 추가적인 에너지흡수장치를 장착하여 충돌에너지가 흡수되도록 할 것
2) 철도차량 제작자는 고속철도차량이 정해진 표준충돌사고각본에 의하여 제1)항의 규정에 의한 기준을 만족하는 지의 여부를 확인하여야 한다.
위와 같은 안전기준을 만족하기 위해 열차의 선두차에 연결기 에너지 흡수 구조, 유압식 사이드 버퍼, 충돌 흡수구조 등의 적용을 통해 충돌 에너지를 직접적으로 흡수하고 줄일 수 있는 설계를 적용하기 시작했다. 또한 객실 차체 양단부의 소재와 두께를 달리 적용하여 충돌사고 발생 시 객실로 충돌 에너지가 먼저 전달되지 않도록 설계하여 충돌 변위가 발생하게끔 유도하고 충돌 에너지를 순차적으로 흡수하도록 하는 설계도 본격적으로 적용되었다.
사고로부터 최고의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충돌안전 기술
열차 운행 중에는 다양한 유형의 사고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아래와 같은 충돌 시나리오에 의거하여 차량의 안전 설계를 함으로써 사고 발생률을 낮출 수 있기 때문에 다양한 사고 상황을 미리 예측하고 분석하는 것은 철도차량의 설계 과정에서 매우 중요하다.
정면 충돌 사고
2대의 열차가 서로 충돌하는 상황으로, 열차 충돌 사고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상황이다. 승객 안전에도 가장 큰 위협이 되는 유형의 사고이기 때문에 대비책이 가장 적극적으로 고려되어야 하는 상황이다.
이종차량 충돌 사고
이종(異種)차량과의 충돌은 2대의 이종차량이 함께 운행하며 관제 오류 등의 변수로 발생할 수 있는 사고 상황이다. 이 상황을 통해 이종차량과의 혼합 운행으로 인한 각 차량의 충돌 안전도를 분석하고 사고 상황에서의 안전조치 프로세스를 준비할 수 있다.
대형 장애물 충돌 사고
철도 건널목에서 트럭, 트레일러 등과 같은 대형 차량과 열차가 충돌하는 상황으로, 대형 차량의 운전자는 물론 열차의 파손과 탈선 등을 유발해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소형 장애물 충돌 사고
열차 주행 중 돌발적으로 만날 수 있는 야생동물, 선로 지장물 등 소형 장애물과의 충돌 상황이다. 이는 탈선 위험도를 높이는 요인이므로 충돌 후 발생할 수 있는 손상과 2차 사고를 최소화하기 위해 고속열차 선단에 장애물 제거기 장착을 의무화하는 등의 안전 기준이 마련되어 있다.
이렇듯 열차 운행 중 발생 가능한 다양한 사고 시나리오는 철도차량 설계 과정에서 충돌 안전도를 평가하고 안전 대책을 마련하는데 중요한 도구로 활용된다. 다방면의 사고 상황 분석과 대비를 통해 더욱 안전한 운행조건을 갖출 수 있다.
주행 중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사고로부터 철도차량의 안전성을 높이기 위한 안전 기술은 꾸준한 발전을 거쳐왔다. 충돌사고 발생 시 승객 안전을 확보하는 것은 물론 사고가 발생하기 전 미리 사고를 예방하거나 회피하는 방식으로 까지 다양한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능동안전(Active Safety) 기술
능동안전 기술은 차량의 충돌 사고 발생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안전확보 기술이다. 과거에는 브레이크와 같은 기계식 제동 장치만이 차량의 능동안전 장치였으나, 현재는 다양한 제어 기술의 발전으로 사고 위험을 크게 줄이는 안전 기술이 적용되고 있다.
자동차 분야에서는 제동장치와 차량제어 시스템을 연계시킨 전방충돌 경고(FCW, Forward Collision Warning) 및 전방충돌회피 보조(FCA, Forward Avoidance Assist) 등의 전방충돌방지 시스템을 비롯한 다양한 능동안전 기술이 적용되고 있으며, 자율주행 시대에 대비하여 더욱 진보된 능동안전 기술이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다.
열차 분야에서는 차량과 차량, 혹은 차량과 관제소 간의 통신 시스템을 활용한다. 이를 통해 열차의 속도를 물리/전기적으로 제어하여 충돌을 방지하는 자동열차정지(ATS, Auto Train Stop), 자동열차제어(ATC, Automatic Train Control), 자동열차보호(ATP, Automatic Train Protection) 등의 시스템을 통해 열차 운행 시 안전성을 향상시킨다.
수동안전(Passive Safety) 기술
사고 발생 시 차량 손상이나 승객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수동안전 기술도 계속 발전하고 있다. 이는 충돌 시 차체로 전달되는 충격을 완화시키는 차체 설계 및 구조물 등을 적용해 안전을 확보하는 기술이다.
자동차 분야에서는 차체 전면부에 ‘Crash Box’라는 설계 구조를 적용해 충돌 시 발생하는 에너지를 흡수하는 방식으로 승객을 보호한다. 또한 안전벨트와 에어백 등 실내로 전달되는 충격으로부터 승객을 직접 보호하는 장치도 대표적인 수동안전 기술이다.
그러나 철도차량 분야에는 이러한 기술의 적용이 제한적이다. 열차는 제동 거리가 길고 충돌 속도가 상대적으로 낮을 뿐 아니라 동작 위치도 다르기 때문에 자동차에 사용되는 에어백은 적용이 불가능하다. 안전벨트는 탑승객의 상해 저감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차체 손상, 화재 등의 비상상황에서 신속한 탈출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이처럼 수동안전 기술 적용이 제한적인 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철도차량 분야에서는 충돌 에너지 관리(CEM, Crash Energy Management) 개념이 적용된 차체 설계로써 사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안전성을 확보한다.
사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충돌 에너지 관리(Crash Energy Management)
열차 분야에서 수동안전 기술의 핵심이 되는 충돌 에너지 관리 시스템(Crash Energy Management System, 이하 ‘CEM’)은 열차 충돌 시 발생하는 에너지가 위험 인자가 되는 것을 억제하는 기술이다. 충돌 에너지를 효과적으로 흡수하고 분산시키는 차량 구조 최적화를 통해 충돌 피해를 최소화하여 승객과 승무원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해 차량 전면 및 후면 부분에 사고 시 충돌 에너지를 흡수하는 ‘에너지 흡수 구조’를 적용한다. 또한 차량 내부에 승객이 안전하게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안전 구역’도 설정되어야 한다. 또한 충돌 시 발생하는 에너지를 줄이기 위해 차량 구조재에 경량화 소재를 적용하는 등의 ‘차량 경량화’도 충돌안전설계 시에 고려되는 요소이다.
CEM의 실제 적용 사례는 크게 5개 부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자동차의 범퍼처럼 열차 앞뒤에 설치되어 충격 흡수 역할을 하는 버퍼(Buffer), 각 차량을 안정적으로 연결하고 충돌 시에도 열차가 분리되지 않게끔 도와 충돌 시 발생하는 에너지 전달을 제어하고 충돌의 영향을 최소화하는 연결기(Front Coupler), 충돌 시 변형을 통해 차량에 에너지 흡수를 위한 공간을 제공하는 낮은 에너지 흡수 구조물(Structural Deformation behind the Coupler/Buffers), 충돌 시 발생하는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흡수하도록 열차 전면부에 고강도의 육각형 구조물을 적용한 전면부 허니컴 구조(Front Honeycomb Structure), 충돌 시 승객 보호를 위해 충격을 흡수하고 분산시키는 차량 설계와 소재 구성을 이루는 차량 구조(Body Structure)를 통해 차량 충돌 시 안전성을 향상시킨다.
이러한 국제규격에 기반한 체계화된 충돌안전 설계가 적용된 철도차량의 대표적인 예시로 프랑스 TGV-Duplex 고속전철은, 객실부 강성을 높이고 부속실 부위 강성은 다소 약하게 제작하는 차체 부위별 강도를 달리하는 설계로 사고 시 충돌 구역, 즉 Crash zone을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충돌 구역은 충돌 내구성 특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고려되어야 하며, 충돌 구역의 영역을 약화시키고 승객 영역을 강화시키는 것을 차량 개발의 원칙으로 한다.
이와 함께 충돌 에너지 관리에 대한 연구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미국은 연방 교통국(DOT, Department of transportation) 산하의 Volpe 연구소를 주축으로 철도차량의 충돌안전에 관한 설계, 해석, 평가 기술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데, 차체 압축강도 기준을 UIC(Union International des Chemins de fer, 국제철도연맹) 기준인 200톤보다 더 높은 350톤으로 높이고 그 외 충돌안전 관련 기준을 모두 상향 조정하여 미국 내에서 운용되는 철도차량에 대한 독자적인 충돌안전 기준을 수립하고 있다.
특히 Volpe 연구소는 2006년 진행한 CEM 장착 차량과 기존 차량의 충돌 테스트를 통해 CEM의 효용성과 필요성을 입증하기도 했다. 정지된 화물열차, 객차, 기관차로 구성된 5량 편성 열차를 30 mph(48 km/h) 속도로 충돌시키는 실차 충돌시험으로 CEM 적용 차량이 기존 열차보다 훨씬 뛰어난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또한 이 충돌 시험을 통해 CEM의 일부인 ‘타고오름 방지 장치'(Anti-climbing device)를 통해 충돌시 피해규모가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것도 함께 입증했다. 기존 열차 간 충돌 사고 시에는 가벼운 차량이 무거운 차량을 타고 오르는 현상(Over-riding)으로 인해 승객의 피해규모가 30배 이상 높아지는 치명적인 위험이 있었다.
실제 사고 사례를 통해 입증된 현대로템 CEM의 안전성
현대로템이 철도차량에 적용하고 있는 CEM 설계 기술은 국내외 프로젝트에 적용되고 있으며, 특히 해외에서 발생한 열차의 사고 사례를 통해 그 안정성이 입증된 사례가 있다.
CEM 적용 차량 사례
2013년 현대로템이 캘리포니아 메트로링크에 납품한 2층 객차가 캘리포니아 랭커스터역 인근에서 대형 트럭과 충돌해 차량 앞부분이 심하게 파손되는 사고가 발생했으나 CEM 덕분에 인명 피해가 없었다. 특히 해당 열차는 운영사인 메트로링크가 안전성 기준을 강화한 이후 납품된 첫 CEM 적용 차량이며, 덕분에 2층 열차 3대에 탑승한 190여명의 승객 대부분이 충돌로 인한 상해를 입지 않았을 정도로 피해가 적었다.
현대로템은 첨단 신호 및 제어 기술 개발로 더욱 충돌이 발생하지 않도록 안전한 운행 조건을 만드는 것에 집중하는 한편, 충돌 시 발생하는 에너지를 효과적으로 흡수 및 분산하는 CEM 도입을 통해 열차의 충돌사고에도 충돌 에너지에 대한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열차 충돌 안전성을 한 단계 더 끌어올렸다. 현대로템은 승객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다양한 연구개발을 통해 가상의 사고 상황 시나리오는 물론, 실제 사고 사례에서도 가장 안전한 열차 설계 능력을 입증하며 국내외에서 가장 안전한 철도차량 제작사로서의 입지를 다져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