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보다 빠른 ‘꿈의 교통수단’, 하이퍼루프
현존하는 가장 빠른 교통수단은 비행기다. 높은 고도로 올라가 시속 900km가량의 빠른 속도로 이동하기 때문에 반나절이면 지구 반대편 대륙까지 이동이 가능하다. 하지만 그리 머지않은 미래에 ‘가장 빠른 교통수단’이라는 타이틀은 하이퍼루프가 차지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하이퍼루프(Hyperloop)는 초음속을 뜻하는 하이퍼소닉(hypersonic)과 순환고리를 뜻하는 루프(loop)의 합성어다. 여기서 루프는 환형 궤도(고리 형태로 구축된 선로)를 순환 운행하는 열차 등의 교통수단을 의미한다. 이는 진공 상태에 가까운(아진공) 튜브 터널에서 자기부상 기술로 띄운 열차가 전자기력을 통해 음속에 가까운(아음속) 속도로 달리는 미래형 초고속 교통 시스템이다. 해외에서는 주로 하이퍼루프로 불리고 국내에서는 ‘하이퍼튜브(Hypertube)’라는 명칭을 쓴다.
전문가들은 하이퍼루프가 최고속도 1200km/h로 이동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한다. 고속열차(시속 300km대)는 물론 비행기(시속 900km대)보다 빨라, 이론상으로는 서울역에서 부산역까지 이동시간을 20분 안팎까지 단축할 수 있다.
하이퍼루프는 비단 빠른 속도만 앞세우는 교통수단이 아니다. 다른 교통수단보다 빠른 만큼 시간당 운행횟수가 많고, 진공관에서 운행되기 때문에 유지보수 관리비가 적으며, 운행시 직접 배출하는 탄소도 없어 친환경적이라는 장점이 있다. 여기에 더해 기상조건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고 역 접근성이 쉬워 비행기보다 편리하다는 장점도 지닌다.

2050년경 전세계 인구 70% 이상이 메가시티(인구 1000만명 이상의 거대도시)에 거주할 것이라는 전망을 고려하면 전국 주요지역을 1시간 이내 생활권으로 연결하는 하이퍼루프는 인구감소에 따른 지역소멸 문제나 지역균형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다.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이 2025년 2월 개최한 창립 29주년 세미나에서 내놓은 전망에 따르면 하이퍼루프 실현에 따른 총 편익은 연간 2000억원 규모, 지역경제 파급효과는 연간 665억원에 달한다. 전 세계 시장으로 눈길을 돌려보면 하이퍼루프의 잠재적 시장규모는 100여개국 2600여개 노선, 연간 세계시장규모는 1.1조달러(약 1540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Sources : 철도경제 ‘하이퍼루프, “교통을 지배하는 자, 세계를 지배”[미래철도 기술]’, 2024.12.17
일론 머스크가 불 붙이고, 전세계가 달려든 하이퍼루프 개발 경쟁
자기부상 열차와 진공 튜브 등의 개념에 기반한 고속 이동수단의 연구는 꽤 오래 전부터 이뤄져왔지만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것은 2013년 테슬라 창업주 일론 머스크를 통해서였다. 그는 튜브 안에서 28인승 밀폐형 캡슐을 띄워 음속으로 주행하는 아이디어를 제안하면서 이를 ‘하이퍼루프’라 명명했다. 이에 따르면 자동차로 5시간 30분, 비행기로는 1시간 정도 걸리는 샌프란시스코~로스앤젤레스 구간(약 613km)을 하이퍼루프는 30분만에 주파 가능하다.

이후 영국 버진그룹 리처드 브랜슨 회장이 투자한 ‘버진 하이퍼루프 원’이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했으며 2017년 사람이 탈 수 있는 실제 크기의 실험 열차가 450m 구간을 시속 384km로 달리는 데 성공했다. 2020년에는 2명을 태운 유인 테스트에서 시속 172km를 기록했지만 이후 사업이 더디게 진행되다가 2023년 운영 중단에 들어갔다.
유럽에서는 2024년 네덜란드 빈담시에 420m 길이로 Y자 형태의 선로를 포함한 하이퍼루프 시험센터가 건설되었다. 해당 센터는 델프트 공대 연구팀이 창업한 HARDT가 구축한 것으로, 자기부상차량 개발이 함께 진행 중이다. 비슷한 시기 독일에서는 뮌헨공대가 하이퍼튜브 시작품을 개발했다.

가장 먼저 연구 시작한 ‘한국형 하이퍼루프’ 하이퍼튜브 기술개발 프로젝트

한국은 일론 머스크를 통해 대중적으로 알려지기 이전부터 하이퍼루프 기술 연구를 진행해왔다. 한국철도기술연구원(철도연)은 2009년부터 ‘초고속 튜브철도 기술개발’ 프로젝트를 통해 하이퍼루프에 대한 기초연구를 시작했으며, 0.2기압의 저압튜브에서 52분의 1 크기로 축소한 차량을 시속 700km로 달리게 하는 데 성공했다. 2011~2015년 철도연과 한국기계연구원이 공동으로 수행한 ‘초고속 자기부상철도 기술 개발’ 프로젝트를 통해서는 대용량 선형동기모터 추진 기술을 적용한 시속 550km급 자기부상열차 시제품을 개발하고, 충북 오송에 구축한 150m 길이의 자기부상 시험선로에서 테스트까지 진행했다.

2016년부터 2024년까지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지원사업으로 ‘아음속 캡슐트레인 핵심기술개발’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아음속(亞音速) 캡슐트레인은 아진공 튜브 내에서 음속의 0.8배에 해당하는 시속 1,000km급으로 주행하는 초고속 캡슐형 열차를 의미한다.

이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철도연은 지난 2020년 1/17 크기의 축소형 하이퍼튜브 시험장치를 이용해 0.001 기압에서 시속 1019km의 속도를 내는 데 성공했다. 이는 하이퍼루프의 음속 주행을 세계 최초로 규명한 사례로, 하이퍼튜브의 기본 설계와 원천 기술 확보를 통해 상용화로 나아가는 발판이 마련되었다는 평가다. 일찌감치 하이퍼루프 핵심기술에 대한 연구개발을 진행해온 한국은 진공튜브 기술, 고온초전도 기반 자기부상 및 추진 기술, 초고속 주행 안정화 기술 등에서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한 것으로 여겨진다. *
*sources : 철도경제, ‘새로운 교통혁명 일으킬 주역, ‘하이퍼루프’[미래철도 기술]’, 2024.11.12.
정부는 2018년 제4차 과학기술기본계획 내의 ‘스마트 철도교통 기술’ 부문에 포함한 것을 시작으로 ‘하이퍼튜브’라는 명칭 아래 관련 기술개발 사업을 추진해왔다. 2021년 제4차 국가철도망 구축 계획(2021~2030년), 2022년 정부의 120대 국정과제 등에 포함되며 기대감이 더해졌다. 하지만 2022년과 2023년 연이어 예비타당성조사에서 탈락하며 사업이 잠시 지연되었다. 이에 국토교통부는 하이퍼튜브 핵심기술인 초전도 자기부상 및 리니어 추진시스템 개발에 먼저 집중한 뒤 단계적으로 상용화를 이뤄가는 것으로 사업방향을 보완했다. 단계별로는 2025년부터 2030년까지 핵심기술 개발을 완료하고, 2028년부터 2037년까지는 하이퍼튜브 시험선 구축과 실증평가를 거쳐 실용화 기술 개발에 나선다. 이르면 2038년 시범노선 구축 등 상용화가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가 추진하는 하이퍼튜브 시스템은 기본적으로 선형 동기모터와 초전도 유도반발 자기부상 방식의 조합을 따른다. 추진력은 차량에 탑재된 초전도 전자석과 지상의 전자레일(전기자)간 자기장이 서로 밀고 당기는 힘에서 얻고, 차량 전자석 및 지상 전자레일의 자극 동기화와 차량 점유궤도 구간에서만 추진 전력이 공급되는 섹선 급전 제어가 추진을 조절한다. 자기부상 원리는 유도반발(EDS, Electrodynamic Suspension) 방식을 따르는데, 차량 전자석과 지상 전자레일에 발생하는 유도 자기장과의 반발력을 통해 약 100mm 높이로 자기부상과 안내를 유지한다.
이 같은 자기부상 및 추진 기술은 하이퍼튜브 시스템에 다양한 이점을 가져다 준다. 먼저 추력의 밀도가 커서 초고속화에 유리하고, 초고속 주행상황에서 차량의 주행안정성도 높다. 유도반발식 제어기술 덕분에 별도의 자기부상이나 안내 제어장치가 필요 없다는 것도 장점이다. 다만 일정 속도에 도달할 때까지는 일반 철도차량과 같은 바퀴 주행이 필요하다. 인프라 구축 관점에서는 궤도 시공의 정밀도가 완화되어 건설비 저감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국토교통부는 먼저 2027년까지 3년간 127억원을 투자해 하이퍼튜브 상용화를 위한 핵심기술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연구개발은 차량의 아음속 주행 구현을 위한 자기부상 및 추진 시스템 기술 개발과 단거리 시험선로에서 축소형 주행체의 실주행 시험을 통한 아진공 환경 성능 검증을 목표로 진행된다.

세부 연구개발 과제는 ① 선형 전자기 추진 가이드웨이 기술, ② 추진-부상용 고온 초전도 전자석 시스템 개발, ③ 초고속 선형 추진 제어 기술, ④ 초전도 유도반발식 자기부상 기술 등 4가지 기술이다. 각각의 구성 기술은 고속철도와 비교하면 ① 가공전차선 및 궤도 노반, ② 차량 엔진, ③ 차상추진전력(인버터), ④ 휠-레일 및 주행 대차로 설명할 수 있다.

현대로템, 향후 국책사업의 중심으로
현대로템은 철도연이 주관하는 이 연구개발 사업에 공동연구개발기관으로 참여해 초고속 선형 추진 제어기술 분야 중 ‘섹션 추진제어기’와 ‘추진 전력 에너지 세이버’ 기술 개발을 담당하게 된다. 초고속 선형 추진 제어기술은 아음속 주행 차량의 추진력 및 속도제어 역할을 하는 핵심 구성요소로, 연구개발 일정에 맞춰 1차연도인 2025년 설계를 마치고 2차연도(2026년)에는 제작 및 단품 평가, 3차 연도(2027년)까지 시험 및 평가를 마칠 예정이다.

1대당 승객수는 20~25명, 차량 운행 간격은 5분 이내를 목표로 한다. 왕복 기준 예상 수송량은 시간당 최대 2000명이다.
국토교통부는 2025년 4월 9일 국토교통부 주관으로 열린 차세대 철도시스템 하이퍼튜브 핵심기술 개발 TF킥오프 회의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사업에 착수했다. 이 회의에는 국토교통부, 국토교통과학진흥원, TF민간위원, 사업수행 주관∙공동∙위탁기관 책임자 등이 참석하여 핵심기술 연구 전략 발표 및 자유토론이 진행됐다. 이어, 4월 11일에는 국회 의원회관에서 ‘미래 혁신 모빌리티 하이퍼튜브 정책토론회’를 열고 이르면 2038년 시범노선을 운행할 계획’이라는 청사진을 내놓았다.

이원상 현대로템 레일솔루션 연구소장은 고속철도 개발 경험을 바탕으로 하이퍼튜브 핵심기술 확보에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현대로템도 이번 정책토론회에 참석해 하이퍼튜브의 국내 도입 필요성과 성공적인 상용화를 위해 필요한 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이날 토론에 패널로 참여한 이원상 현대로템 레일솔루션 연구소장은 “기존 고속철의 경우 속도를 높일수록 공기저항이 급증해 에너지 낭비가 심해지는 단점이 있으며, 글로벌 추세 또한 속도 경쟁보다는 에너지 효율 중심으로 전환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자기부상 및 진공 환경을 활용하면 기존 철도 기술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으며, 더 빠르고 효율적인 미래형 교통수단으로 전환하기 위해 하이퍼튜브 개발이 필요하다는 의견이었다.
또한 이원상 연구소장은 하이퍼튜브가 현재 국내 철도 기술 수준으로도 충분히 실현 가능한 대안임을 강조하며, “현대로템은 그동안 축적해온 고속화 기술 개발 경험을 바탕으로 하이퍼튜브 핵심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기술적 실현 단계에 접어든 하이퍼튜브의 조기 상용화를 위해 시범사업, 제도 정비, 실증 프로젝트 등의 추진이 필요하며, 국가 차원의 중장기 투자 및 전략 수립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대로템은 지난 30년간 고속차량 설계 및 제작 핵심기술을 축적해온 글로벌 톱 레벨의 고속차량 제작사다. 1997년 시작해 2007년 빛을 본 한국형 고속열차 KTX-산천의 상용화, 2007년 HEMU-430X 개발로 시작해 2016년 완성된 동력분산식 고속차량 KTX-이음의 생산, 그리고 2021년부터 진행되고 있는 EMU-370 핵심기술(추진, 대차, 전장 등) 개발까지 착실하게 갖춰온 고속열차 설계 및 제작 노하우는 음속에 가까운 초고속 교통수단인 하이퍼튜브의 성공적인 개발과 상용화에도 큰 힘이 될 전망이다.

특히 GTX는 지하 40m 이하 대심도에서 운행하는 특성에 따라 전구간 터널화가 진행되어, 하이퍼튜브의 아진공 튜브 인프라 구축에 상당한 보탬이 될 전망이다. 아울러 현대로템이 개발하고 납품한 GTX 차량은 대심도 터널의 낮은 공기저항에 기인하여 KTX보다 추진력과 안정성에서 앞선다. 하이퍼튜브 열차가 음속에 가까운 속도로 달릴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도 진공에 가까운 환경과 이에 따른 낮은 공기저항에서 찾을 수 있다. 최근 개통한 GTX-A 파주~동탄 노선이 하루 6만명 이상의 이동을 책임지며 수요 및 사업성을 입증했다는 점도 하이퍼튜브의 개발에 힘을 실어줄 수 있게 됐다.

이원상 연구소장은 국회 토론회 현장에서 “지금의 수도권광역철도(GTX) 기술로도 서울에서 부산까지 완벽한 선형을 만들 수 있다. 하이퍼튜브는 결코 먼 미래의 일이 아니며, GTX의 다음 모델일 것으로 전망한다”며 하이퍼튜브의 실현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현대로템은 철도차량부터 시스템, O&M, 유지보수 서비스까지 철도 전 분야에 걸친 혁신기술 개발과 상용화로 21세기 대한민국 철도산업을 선도해왔다. 이제 또 다른 혁신인 ‘꿈의 열차’ 하이퍼튜브를 통해 현대로템은 ‘지속가능한 또 하나의 모빌리티’ 세상을 향해 달려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