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기업들에게 가장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콘텐츠 소재 중 하나는 가상현실(Virtual Reality, VR)과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AR)이다. 게임, 공연, 전시 등의 문화예술 분야를 중심으로 VR 및 AR 기술 개발과 콘텐츠 제작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고, 관련 산업의 매출 규모가 매년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가상융합 기술, 제조업으로 영역을 넓히다
가상융합 기술이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만 각광받고 있는 것은 아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발간한 ‘2021 가상증강현실(VR/AR)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가상현실 및 증강현실 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기업 중 산업용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는 기업의 수가 문화 콘텐츠 제작 기업에 이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251개). 또한 제조업 분야에서 ‘게임체인저’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디지털 트윈(Digital Twin)도 가상융합 기술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 많은 기업들이 관련 기술에 투자하고 있다.
관련 업계는 가상융합 기술의 최종 발전 형태를 ‘메타버스(Metaverse)’의 구현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기존 VR 및 AR이 진화한 MR(Mixed Reality, 혼합현실), XR(eXtended Reality, 확장현실)의 선제적인 개발과 제조업 분야로의 적용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와 같은 고도화된 가상융합 기술이 실제로 적용되면 완벽하게 구현된 가상 세계에서의 ‘버추얼 팩토리’를 통해 디지털 트윈의 실현이 가능해진다.
제조업 분야의 기업들은 가상융합 기술을 통해 ‘원격 지원’의 효율적인 활용이 가능하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나의 콘텐츠에 불특정한 장소에서 다수의 참여자들이 연결된 상태에서 소통을 하고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 기술 실현을 목표로 VR과 AR 기술을 활용한 기계의 설계 및 유지보수 관련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특히 가상융합 기술은 철도차량의 유지보수 측면에서 활용도가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전통적인 철도차량의 유지보수는 실제 차량이나 부품을 갖추고 있어야 정상적인 교육과 훈련이 가능했다. 그러나 VR / AR 콘텐츠를 활용하면 장소와 시간을 불문하고 다양한 분야의 교육 학습을 진행할 수 있다. 현대로템은 이에 따라 ‘VR&데이터분석실’을 구축하고 가상현실과 증강현실 기술을 활용한 교육훈련 콘텐츠를 개발하고 있다. 현재 부품의 분해조립 및 차량 운행 매뉴얼 개발까지 마친 상태로 그 실효성을 검증 중에 있다.
증강현실을 활용한 현대로템의 유지보수 교육훈련 콘텐츠
현대로템은 지난해 철도차량의 유지보수 교육훈련을 위해 AR 기술을 접목시킨 콘텐츠를 개발했다. 해당 콘텐츠는 저널박스, 속도검출기, 스프링 등 10여 개의 부품을 점검할 수 있으며, 각 부품에 따른 검수 기록과 검수 주기 등과 같은 정보를 표기해 교육 효과를 높일 수 있도록 구성했다. 카메라를 통해 대차 모형 부품의 QR코드를 스캔하면 실제 부품에 해당하는 3D 모델링을 불러올 수 있으며, 학습자는 태블릿 PC에 표기된 3D 모델을 자유자재로 살펴볼 수 있다.
여러 대차 부품 검사 중 1차 스프링의 검수를 진행한다고 가정했을 때, 피교육자는 크게 세 단계의 학습을 거친다. 첫 번째는 ‘검사’ 과정으로, 외관 상태를 확인하고 치수 측정을 통해 스프링을 검사한다. 두 번째는 균열이 일어난 스프링에 적절한 수리 조치를 실시하는 과정이다. 예컨대 균열 부분을 전용 접착제로 접착하고 헝겊을 활용해 이물질을 제거하는 것이다. 마지막 과정은 균열 크기에 따라 부품 교체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부품을 교체하고 재차 조립하는 과정을 거쳐 부품별 이슈에 해당하는 적절한 조치를 하도록 유도한다.
모든 학습은 실제 부품을 수리하는 과정과 같은 현실감을 더하기 위해 모션 기반의 인터랙션을 갖추고 있다. 예컨대 이물질을 제거하는 과정은 헝겊을 손가락으로 잡은 상태에서 상하로 드래그하는 모션을 인식하게끔 프로그래밍 됐다. 부품의 균열 부위에 접착제를 도포하는 과정 역시 실제와 유사하게 진행된다. 또한 교육 훈련을 목적으로 한 콘텐츠인 만큼, 모든 과정에 음성 내레이션을 더해 학습자가 상황에 따라 보다 정확한 대처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기존의 유지보수 관련 교육 훈련은 오프라인에서 강사의 강의를 듣거나 정비 현장에서 실제 정비하는 모습을 관찰하고 실습하는 개념이었다. 반면 AR 기반의 디지털 콘텐츠는 태블릿 PC 등 관련 장비만 갖추고 있으면 테마에 맞는 교육을 빠르고 정확하게 받을 수 있어 효율적인 교육훈련 콘텐츠로 자리매김할 전망이다. 현대로템은 추후에도 학습자의 현장감을 높이기 위해 인터랙션의 완성도와 시스템 접근성을 지속적으로 향상시켜 나갈 계획이다.
가상현실로 실감 나게 체험하는 현대로템의 기관사 교육훈련 콘텐츠
아울러 현대로템은 VR 기술을 활용한 기관사 교육훈련 콘텐츠의 개발도 마무리를 앞두고 있다. 해당 콘텐츠는 기관사의 역할 학습이 필요한 학습자가 직접 VR 기기를 착용하여 차량 점검과 더불어 실제 주행까지 체험해 볼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본격적인 콘텐츠는 차량 외부에서 탑승하는 과정부터 시작되며, VR 기기의 컨트롤러로 차량의 문을 열거나 각종 버튼을 조작할 수 있는 다양한 인터랙션을 포함하고 있다.
차량 주행을 위한 기관실 내부의 점검과 모든 조작부 설정을 마치면 마스콘(Master Controller)을 조작해 실제로 일정 거리를 주행하고 제동 장치를 조작하는 과정도 포함돼 있다. 여기서 열차의 데드맨 스위치(Deadman’s switch)를 조작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차량을 주행할 수 없도록 소프트웨어를 구성해 현실성을 가미하는 작업도 거쳤다.
현대로템은 VR 기기의 특성을 고려해 조작 체계에 편의성을 더했다. 예컨대 철도차량의 기관실은 마치 비행기의 콕핏과 같이 복잡하고 다양한 버튼들을 갖추고 있는데, VR 컨트롤러만으로 모든 버튼을 수월하게 조작하는 것은 다소 어려운 작업이다. 이처럼 버튼 조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간단한 인터랙션으로 버튼 부위를 확대해 섬세하게 조작할 수 있게끔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공간이 협소한 곳에서 VR 콘텐츠를 활용할 때는 컨트롤러 조작만으로 원하는 곳으로 공간을 이동하여 편리하게 콘텐츠를 플레이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또한 AR 콘텐츠와는 달리 음성 내레이션이 아닌 텍스트로 구성해 최대한 인터랙션 플레이에 집중할 수 있도록 구성한 것도 특징이다. VR 콘텐츠는 실제 차량을 가상 현실로 고스란히 재현한 만큼, 기관사가 열차 내부를 가상으로 체험하면서 특정 조작부의 실제 위치와 조작법을 쉽게 파악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현재 VR과 AR 콘텐츠에 쓰이고 있는 차량의 3D 모델링은 실제 차량의 카티아(CATIA)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다. 부품의 위치와 크기 등이 정확히 실제와 일치하는 만큼, 문을 열거나 부품을 조작하는 인터랙션을 프로그래밍하는 데에 있어 보다 현실감 있게 구성하는 것이 가능하다. 다만 학습자가 콘텐츠를 플레이할 때, VR 기술의 특성으로 발생하는 편의성 저하를 해소하기 위해 개발자가 데이터를 일정 부분 편집하는 부분도 존재한다. 이는 실제 차량 특성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이뤄지며, 실제 차량 설계팀에서는 VR 설계 검증을 통해 적합성을 판단한다. 동시에 VR 팀에서는 인터랙션 구성을 위한 데이터 분석 중 오류가 발견되면, 역으로 설계 부문에 피드백을 전달해 이를 보완하고 개선하는 과정도 거치고 있다.
현대로템은 2021년 ‘부산국제철도기술산업전’에 이어 2022년 9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이노트랜스 2022’에서 관람객을 대상으로 VR과 AR 부스를 운영해 해당 콘텐츠의 프로토타입을 선보인 바 있다. 관람객들은 기관사 훈련용 VR 콘텐츠와 더불어 유지보수 훈련용 AR을 직접 체험하는 기회를 가졌다. 당시 철도차량 완성업체 중 마스콘을 비롯해 실제 기관실의 기능을 구현한 업체는 현대로템이 유일했다.
현대로템은 가상융합 기술의 연구개발과 빠른 적용을 통해 타사 대비 높은 경쟁력을 보유함과 동시에, 유지보수 측면에서 발생하는 비상 상황에서도 보다 체계적인 대응이 가능해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또한 2023년 초에 최종 콘텐츠의 개발을 완료하여 향후 실제 교육용으로 활용할 계획이며, 철도차량의 안전하고 효율적인 유지보수와 교육훈련을 위해 가상융합 기술의 적용을 꾸준히 확장해 나갈 예정이다.